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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n Apr 22, 2014 in SE 칼럼, 커뮤니티 | 0 comments

WT가 만난 사람_ 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

WT가 만난 사람_ 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

3년 전쯤 서울문화재단의 창업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이선철 대표의 강의를 들었을 때 나는 막 창업을 시작한 이후였다. 정확히 말하면 회사라고 등록만 해 놓고 반년 째 지원금이나 상금 이외의 돈을 벌어본 적이 없었고, 번듯한 직원도 한 명 없이 여전히 창업 프로그램을 들으러 다니고 있던 때였다. 자신의 20대부터 지금까지의 여정을 들려주는 이선철 대표의 이야기는 문화기획을 꿈꾸는 햇병아리 청중들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특유의 빠른 말투 속으로 미끄러지듯 매끈한 표현들 또한 경험에서 오는 자신감 같아 부러웠다. 그는 평창에서 지역 기반 활동을 하고 있지만 ‘감자꽃스튜디오’ 라는 이름이 가진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감자를 캐는 아저씨가 아니라 스마트한 기획자의 모습으로 기억에 남았다.

예술, 문화, 지역을 소재로 한 야생마 같은 비즈니스맨

지역에서 주민들과 어울려 문화예술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은 난도가 높은 일이다. 큰 자본과 멋진 기획으로 힘을 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지역과 공간에 녹아들며 삶과 비즈니스의 연결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단단히 쌓아올린 내공이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을 하는 이선철 대표를 이번엔 강연 자리가 아닌,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좁혀진 거리만큼이나 생생하게 지역 문화활동의 성공 케이스로 자리 잡은 ‘감자꽃스튜디오’ 와 이선철 대표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에이컴퍼니가 운영하는 동숭동의 ‘미나리 하우스’ 에서 인터뷰가 이루어졌기에 자연스럽게 ‘미나리 하우스’ 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이제 막 예술을 문화로, 문화를 지역 안으로 가져가는 일에 흥분하기 시작한 인터뷰어에게 이선철 대표와의 만남은 시기적절한 단비와도 같았다.

도시에서 생활하던 분이 평창으로 내려가 감자꽃스튜디오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그 시작은 어땠나요?

저는 도시 부적응자이거나, 극단적 생태주의자가 아니고, 농촌이 좋아서 평창으로 간 것도 아니에요. 살이 쪄서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 자연을 택했고, 자연이 있는 곳에 가보니 거기에 상황이 있었어요. 나에게 주어진 도구는 문화이기에 주민으로서 자연스럽게 문화를 농촌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뿐이에요. 제가 하는 행위의 결과물로서 지역사회에 도움이 된다면야 그것만큼 좋은 일이 없겠지만, 처음부터 새마을지도자처럼 농촌 지역사회에서 무슨 일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죠.

20대에 폐교를 가지고 문화학교를 만들고 전통악기를 만들었던 경험이 두 번이나 있었기 때문에 폐교가 1년 치 임대료만 상납하면 넓은 공간을 다 쓸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죠. 큰 욕심 내지 않고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비밀 공간을 생각하고 내려갔다가 1년 만에 30kg이 쭉 빠졌어요. 감자꽃스튜디오도 시작되었고요.

 폐교는 주민들에게 어떤 곳이었나요? 감자꽃스튜디오로 바뀐 후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감자꽃스튜디오의 원래 건물은 많은 주민에게 어린 시절 다녔던 모교예요. 자기 모교가 폐허처럼 방치되어 있었는데, 몇 사람이 들어오더니 건물도 멋지게 되고, 알고 보면 원형도 유지되어 있고, 사진도 찍어서 기념관처럼 하나 만들어 드리니까 일단은 단순히 물리적인 변화만으로도 의미를 인식해주셨죠. 거기에 프로그램이 들어가니까 더 좋은 거고요. 사람 사는 동네니까 생각이 다른 경우는 있죠. 예를 들어 펜션 사장님처럼 이해관계가 직접 있는 사람은 호의성의 강도가 높은 것이고, 아닌 사람들은 무관심하거나 ‘뭐 그래도 좋은 일 하는 곳이지’ 하는 거죠.

 지역 문화예술 활동을 이야기할 때 감자꽃스튜디오가 성공사례로 꼽히는데요. 감자꽃스튜디오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대체로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지만 자신에게 직접 돌아오는 혜택은 없어도 자식이나 지역의 아이들에게 좋은 일을 해주면 좋아하시더라고요. 예를 들어 제가 지역의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에 가서 뮤지컬을 보고 왔는데 다음날 군청 과장님이 전화하셨어요. 그 아이를 위해서 사심 없이 하는 행동인데 좋은 여론은 그렇게 형성될 수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감자꽃스튜디오 매니저가 뮤지션인데, 지역에서 롤모델이 되고 있어요. 엔지니어이고, 예술강사이고, 음반도 나오고, 기획 일도 하고, 경희 사이버 대학 다니니까 대학생이기도 하고요. 그 친구가 시골에서 동년배 친구들보다는 훨씬 생활도 자유로운데, 급여도 낮지 않은 편인 거죠. 사실 시골 청년들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편의점 알바밖에 더 있겠어요, 단란주점 웨이터하고요. 그에 비해서 감자꽃에 소속되어 있으니까 다양한 기회들이 생기는 거죠.

 감자꽃스튜디오의 재정적 운영 상황은 어떤가요?

사실 죽을 것 같아요. 그 시골구석에서 그 큰 공간을, 보조금도 없이 직원들 유지하기가 쉽겠어요. 그래도 저는 사회적기업, 협동조합은 안 해요. 비즈니스가 아니라 소셜액티비스트 역할로만 가니까 문화예술 비즈니스가 경쟁력이 없는 거예요. 결국에는 스스로 좌절해요. 사회적 가치는 본래의 비즈니스 경쟁력이 밑을 단단히 받쳐줘야 힘을 발휘하고, 그로 발생한 이익을 공동체를 위해 쓰도록 하는 데 있는 겁니다. 전 감자꽃스튜디오를 한 번도 농촌 공간이라 생각한 적이 없어요. 제가 농촌 리더도 아니고요. 이게 감자꽃스튜디오의 운영철학과 맞닿아 있어요. 제가 왜 하루에 스케줄이 많겠어요. 돈 벌려고 스케줄이 많은 거예요.

 문화예술로 비즈니스를 만들기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감자꽃스튜디오는 어떻게 돈을 버나요?

단계별 수익구조의 변이가 있어요. 일단 감자꽃이라는 공간은 개인이 설립할 수 있는 규모는 넘어섰죠. 1단계는 공공자원을 활용하는 것이었죠. 그건 기본이 되는 물리적 인프라이고, 이후에 프로그램적 인프라가 있으면 주변에 평판(reputation)이 생기기 시작해요. ‘감자꽃이 좋은 일 많이 한대, 지역에서 폐교를 살려냈대, 지역의 청소년들이 많이 혜택을 받고 있대.’ 그럼 이 입소문 장사로 방문객들이 현장을 보러 오기 시작하잖아요.

그럼 또 감자꽃은 거기서 축적되는 다양한 스토리나 콘텐츠를 가지고 사례발표도 하고, 강의도 하는 거죠. 결국 제가 외부에서 강의하는 것은 돈 안 되는 장사에 강의한 돈을 붓는 구조가 아니에요. 이 공간과 여기에서의 활동이 나에게는 곧 콘텐츠가 되고, 나는 이를 활용해서 고급 지식노동을 하는 거죠. 이 방식은 영국식 사회적기업 모델이에요. 굉장히 좋은 프로젝트나 공익성을 앞세워서 단체의 브랜드 이미지와 레퓨테이션을 높여 직접 수익도 창출하지만, 이 콘텐츠로 인한 출판, 교육, 컨설팅, 연구로 수익모델을 다변화하는 거죠. 물론 이런 수익구조는 눈에 잘 안 띄기 때문에. ‘감자꽃스튜디오가 동네 애들한테 무료로 악기 가르쳐주는데 남는 게 뭐가 있겠냐.’ 걱정하죠.

 감자꽃스튜디오가 지역경제에 이바지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감자꽃은 농촌이라서 커뮤니티 네트워크가 굉장히 긴밀해요. 만약 감자꽃 안에 숙박, 식사, 자판기가 다 있어서 나 때문에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이 원스톱으로 다 돈을 쓰고 간다면 그건 섬이겠죠. 하지만 어차피 감자꽃이 모든 부분을 감당할 수 없으니 동네에서 할 수 없는 부분만 케어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감자꽃이 돈을 번다 해도 아무에게도 욕먹을 필요가 없는 거고요. 예를 들어 1인당 10만 원을 책정한 40명의 관광객이 24시간 동안 마을에 와요. 그럼 그중에 감자꽃이 책임지는 부분이 6시간이라 하면, 우리는 10만 원 중에 6/24만 갖는 거죠. 밤부터 아침까지 숙박하는 펜션 사장님은 가장 돈을 많이 갖겠죠. 부녀회나 된장찌개 집도 돈을 벌게 되고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 팀이 마을에 와서 쓸 수 있는 돈 중에 대부분이 지역으로 가는 거예요. 우리는 입구에서 영업사원 역할을 하는 것이고요.

 감자꽃스튜디오의 직원들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현지 직원이 아니면 출퇴근이 어려울 것 같은데요.

우리는 스마트워크를 해요. 평창의 현지 직원도 있고, 서울에 사는 직원들도 있는데 모두 편한 곳에서 알아서 일하고 필요에 따라 출근하죠. 저희가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까 이곳저곳에 공간이 생기는 거예요. 주문진에도 춘천에도요. 원래 프로젝트가 끝나면 철수하면 그만인데, 그것 때문에 채용했던 현지 직원들도 좋아서 공공프로젝트가 끝나도 어떻게든 관계를 유지하면서 춘천, 강릉, 평창에 매니저로 두고 있죠. 공통의 관리, 연구, 홍보, 기획 이런 건 시골에서 사람 구하기 힘드니까 서울에서 채용을 했고, 대학로 사무실에 있기도 했었는데 다들 결혼을 해서 지금은 집에서 일하고 있어요. 연구팀장은 서울 강남 신사동, 관리팀장은 경기도 김포, 홍보담당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다가 가끔 얼굴 보자며 모이죠.

 문화예술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문화예술은 대상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가 될 수 있어요. 학생들에게는 교육의 도구, 지역주민에게는 여가의 도구, 펜션 사장님에게는 소득과 관광의 도구, 감자꽃의 경우에는 네트워킹의 도구, 캠프나 축제의 도구, 송년회의 도구일 수도 있어요. 실제로 우리는 매년 12월 24일 송년회로 주민들이 다 모여서 각자 준비한 공연을 하고 놀아요. 거기 예산이 있겠어요, 프로듀서가 있겠어요? 결국은 서로 도와주는 거죠. 시골교회의 성극 경연대회로 끝날 수 있는 건데 목사님이 과감히 커뮤니티로 갖고 나오시니까 마을 전체의 축제가 되는 거고, 교회 역시 하나의 공동체로 오랫동안 역할을 해왔던 곳인데 문화공간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니까 상부상조하는 것이죠. 결국 예술가 및 예술은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의 소재이자 도구라고 생각해요.

문화경영이나 문화기획영역이 여러 가지로 나눠볼 수 있어요. 제가 영국에서 다닌 학교도 분야에서는 그 당시에 꽤 유명한 학교였는데, 입학할 때 과 이름이 arts management였어요. 예술경영, 주로 전시기획, 예술단체 운영, 공연기획 이런 좁은 의미의 공급자인 예술가의 활동을 돕는 수단으로서의 예술경영이었거든요. 근데 최근에 학과 이름이 culture management로 바뀌었어요. 점점 더 문화예술이 도구로써 쓰일 수 있는 영역이 많아지니까요. 마케팅이라든지, 홍보라든지, 복지의 영역에서도요.

 미나리 하우스는 예술가 작업실과 게스트하우스, 전시 공간이 합쳐진 곳이에요. 운영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미나리 하우스로는 돈 벌기 어려워요. 그리고 일단 대표가 여기 들어와 살아야 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냥 네트워크 공간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안에서 하고 싶었던 일을 펼칠 수 있는 장으로 운영하면 좋을 거예요. 제가 보기에는 게스트하우스는 기능적인 것이고, 더 큰 의미에서 이곳에서는 문화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예를 들어 ‘미나리 하우스를 가게 되면 시트콤을 찍는다’ 는 느낌으로 사람들에게 스토리텔링을 하는 거죠. 이 공간은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잖아요. 제가 뉴욕에 갔을 때 ‘Musician’s Hotel’ 이라는 곳이 있었어요. 거기에 음악 시설이 있는 건 아니고 뮤지션들이 게으르다는 점에 착안해서 ‘Breakfast 11 o clock’이라고 써 놓은 거죠. 뮤지션 타임에 맞춰서 라운지는 밤 10부터 새벽 2시로 써놓고 리셉션에서는 각종 공연 할인티켓을 팔고요. 이렇게 문화를 만들어주니까 뮤지션들은 거기 오는 거죠. 그들한테는 그곳이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 마케팅이라고 하는 것은 이 생태계에서 서식하는 관계자들 사이에서의 인식과 만족도 차이에요. 대국민 인식 재고 필요도 없고 일단 성공했다 하면 성공인 거예요.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에 대한 재정적 지원과 함께 인큐베이팅, 멘토링 등이 쏟아지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세요?

정책적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은 거슬러 올라가면 교수님 같은 사람들이니까 대체로 시장의 성과보다는 지표적 성과를 훨씬 중요하게 받아들이죠. 하지만 문화 비즈니스 따로 있고 경제 비즈니스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어떤 현상이 시장에서 성과를 얻으면 사람들이 그걸 연구하고, 추종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문화가 되는 거죠. 성공 사례들은 공공지원이나 인큐베이팅의 결과물이 절대 아니에요. 지원은 지원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 사업을 책임져주지 않는 거잖아요. 지원은 도구이고, 환경이고, 촉매역할을 하는 것뿐이에요. 인큐베이팅도 기본 역량과 경쟁력이 있는 상황에서 잘 모르는 부분을 채워준다거나, 멘토링을 통해서 시행착오를 줄여가는 것이지 교육훈련을 통해 사업으로 육성되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제가 지금 갖고 있는 키워드는 마을 방문자들, 농촌 관광의 콘텐츠를 조금 더 고급화하는 것이에요. 나이에 맞는 비즈니스의 경험이 있다는 게 감사한 일이에요. 김덕수 사물놀이라고 하는 전통문화 콘텐츠, 비영리단체, 글로벌 활동으로 20대를 보내고, 30대는 자우림, 긱스, 이승환, 롤러코스터랑 대중문화 관련 일을 하다 보니까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에 대한 단련이 되었어요. 40대에는 지역문화,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면 다가올 50대에는 그런 것들을 업그레이드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요즘 관심 있는 게 승마에요. 농촌 주민들이 개, 돼지 키우는 것에 비해 말 자체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부가 가치가 있는 동물이잖아요. 동네가 환경도 좋으니까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 얼마 전에는 제주도 가서 말 농장만 12개 곳을 보고 왔어요. 그 다음 관심 있는 게 맥주 양조이고요. 막걸리 소주는 저부가라서 관심이 없어요. 하우스 맥주에 주세가 다 폐지되고 나서 제주도, 완주, 가평 지방에서도 하우스 맥주를 하고, 이태원에 하고 있죠. 감자꽃 마당에도 호프집 하다가 문 닫게 된 선배 덕분에 이미 독일제 양조기계가 엄청 큰 게 들어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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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감자꽃스튜디오를 기반으로 사업과 생활을 하실 건가요?

감자꽃이라는 공간이 곧 나의 생활공간이었지만, 방문객이 많아져 이제 제 사생활을 지킬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어요. 대신 인근의 산 중턱에 컨테이너를 디자인해서 재밌게 꾸미고 살고 싶어요. 나 자신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나만의 거처를 만들어야겠죠. 그리고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을 스마트 기반으로 유통시키고 싶고요. 이렇게 제 shelter에서의 삶이 유통이 되면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영감이나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책이 될 수도 있고, 예술 작품을 만들 수도 있는 거고.

취재·글 | 정지연 (주)에이컴퍼니 대표

(주)에이컴퍼니는 공정 미술(Fair Operating Art)을 실천하며 미술 작품 유통 및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를 통해 대중화를 시도하고 있다. 동숭동에 <미나리 하우스> 라는 복합문화공간을 운영하고 있으며, 매년 여름에는 <브리즈 아트페어>를 개최한다.감자꽃스튜디오는 자연과 예술 그리고 지역을 핵심가치로 지향하는 문화공간이자 단체의 이름으로, 공연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와 교육가 및 기획자와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이들과 함께 청소년, 마을주민, 교사와 공무원은 물론 장애인, 노인, 다문화와 군장병 등 취약계층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감자꽃의 프로젝트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감자꽃 내부 사업으로 봄소풍, 여름캠프, 가을운동회, 겨울성탄극장 등 지역민과 함께 만들어 내는 절기별 문화예술 프로그램이다. 또 하나는 외부에서 진행되는 보조 사업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강릉시가 주관하는 ‘문전성시’ 사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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